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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Korean Academy of Science and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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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의 창 2019 봄호_Dr. Y의 노트(최도훈 교수)

이름 |
관리자
Date |
2020-06-17
Hit |
9
‘Dr.Y의 노트’는 한국차세대과학기술한림원(Y-KAST) 회원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네모난 창입니다. 차세대회원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물’을 통해 젊은 과학자들의 생각을 듣고, 그 가치를 함께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이번 한림원의 창 봄호에서는 다양한 수의 구조를 연구하며 본인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젊은 수학자 최도훈 고려대 교수의 노트를 열어봅니다.
다양한 수의 구조를 연구하는 수학자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답’을 찾다

고교시절 수학은 끊임없는 암기의 연속이었다. 교과서에 있는 수식을 외웠다가 문제가 나오면 공식을 적용해 풀면 그만이었다. 대학에서 접한 수학은 달랐다. 미적분학을 배우며 수학도 물리학처럼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면서 해결방안을 찾는 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이 최도훈 고려대학교 교수가 수학에 빠지게 된 계기였다.

숫자로 흰 보드를 자유롭게 채우고
산책으로 생각을 비운다
최도훈 교수의 연구실은 조용했다. 적막한 공간을 채우는 건 연구실에서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는 대형 화이트 보드였다. 빼곡하게 적힌 숫자들은 최 교수에게 무언의 대화를 건네고 있었다.

“작년에 여기 와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보드를 설치하는 거였어요. 제게는 가장 중요한 물건이기도 하고요. 연습장에 나열해도 되지만 보드가 면적이 넓어서 복잡한 공식을 다 적어 놓을 수 있어 연구과정을 한 눈에 보기 편합니다. 또 저는 서서 무언가를 적을 때 두뇌회전이 잘 되더라고요.

최 교수는 2008년 대한수학회가 제정한 ‘상산 젊은 수학자상’의 1회 수상자다.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순수 국내파로서 ‘모듈러 형식’에 대한 논문 10편을 국제학술지에 잇달라 게재하며 국내외 수학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13년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이 출범하며 기초과학분야에서 12개의 지원과제를 선정했는데 그 중 하나가 최 교수가 제안한 ‘아이클러-시무라 코호몰로지 군을 통한 양자 보형 형식의 조직적 이해 및 산술’ 과제였다. 수학계에서는 그가 학문적으로 매우 독창적 영역을 구축해가고 있어 세계적인 수학자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변의 촉망이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최 교수는 흔들림이 없다. 수학자로서 연구를 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편안한 마음가짐. 조급한 마음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하던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땐 초심으로 돌아가 개념정리를 먼저 한다. 그래도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잠시 연구를 중단하고 산책을 한다. 비워내고 새롭게 채우기에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자연을 보고 느끼며 걷는 게 훨씬 큰 도움이 된다.

“산책은 가장 좋아하는 휴식이에요. 자주 찾는 곳은 집 근처인 청계천이고, 학교에서는 학생들 수업이 끝나고 대부분 귀가한 저녁 시간에 산책을 합니다. 조용하게 혼자 걷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생각도 정리가 되더라고요. 정말 오랜 시간 공들여 문제를 풀었을 때 기분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몇 년 전 새벽에 머리를 싸매던 문제를 해결했어요. 유레카를 외칠 순 없고 늘 걷던 산책길을 걸으며 행복을 만끽했죠. 많은 생각과 고민을 쏟아 넣었던 시간들마저 저에게는 무척 소중합니다.”
성실과 정직의 학문, 수학
길게 뻗어있는 아주 작은 계단을 묵묵히 오르는 일
수학을 잘하고 싶다는 학생들에게 호기심과 꾸준함을 강조해요. 수학은 참과 거짓이 명확한 학문이고 사소한 부분으로 증명이 안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것들은 기본부터 다시 정직하게, 꼼꼼하게, 꾸준히 노력하면 답은 나오게 되어 있어요.”

수학이라는 학문의 중요한 요소는 성실과 정직이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문제도 차근차근 분석하고 조금씩 이해하면 단순한 원칙만으로 간단히 풀어질 때가 많다. 현상의 이해, 그리고 복잡했던 것이 명쾌한 하나의 해답으로 귀결될 때 수학이라는 학문은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수학에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담겨있어요. 감각에 의존하는 일들은 늘 빠르게 변하고 항상 변수가 따르잖아요. 수학은 ‘단숨에 문제를 해결 하겠다’라는 짧은 호흡으로 가능하지 않아요. 오랜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거죠. 굉장히 논리적인 학문이고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어 내실이 있죠. 아주 작은 계단들이 정말 길게 뻗어있어서 때론 지겨워 보일 수 있지만, 참을성을 갖고 시간을 들이면 어려운 학문은 아니에요.”

최 교수의 세부 전공은 ‘수론(數論)’, 그 중에서도 ‘보형 형식’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수론은 수의 특성이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수학자 가우스가 산술연구에서 현대 수론의 토대를 마련했고, 19세기 이후에는 수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수학과 해석학의 발달된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그 중 보형 형식은 수론, 위상 수학, 초끈 이론 등 수리·물리 분야의 다양한 대상들과 밀접한 관련성으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서 최근 10여 년간 비약적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수는 단순한 대신에 구조가 많지 않아요. 그런데 수론을 분석하려면 구조를 많이 가진 대상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 중 하나가 보형 형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보형 형식 이론은 수론, 수리 물리 분야의 다양한 대상들과 밀접한 관련성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현대 수론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보형 형식을 연구하면 수론의 다양한 대상들에 응용할 수 있는 거죠. 수학연구를 할 때 실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한 주제를 찾기 보다는 학문적 호기심을 기준으로 선택하기는 하지만, 수학이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과 유용성은 매우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과정’을 가르치는 수학교육 필요
장기적인 관점의 정책 수립해야
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왜 깊이 있게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사칙연산만 할 줄 알아도 일상생활에는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의 수학 교육도 ‘쉽게’가 핵심어로 자리 잡고 있다. 2021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범위에서 기하와 벡터를 제외한다는 발표가 나면서 수학계는 뒤숭숭한 상황이다. 최 교수는 이런 현실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준이란 게 있잖아요. 기하나 벡터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고등교육 때 제외가 된다고 하면 대학교 때 가르쳐야 하는 거잖아요. 대학 4년은 수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의 과정을 배워야 하는 시기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짧은 기간이죠.”   

수학은 과학기술, 나아가 국가 경쟁력의 기초가 되는 학문이다.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 등의 선진국에서는 어려운 부분도 어떻게든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지만 우리나라는 예외다. 사회적으로도 수학을 중시하지 않는데다 인기 있는 과목도 아닌 상황에서 최 교수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게 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예로 페르마 방정식 자체가 단순하지만,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굉장히 많은 과정들이 필요해요. 수학은 문제를 풀고 답을 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가 중요해요. ‘빨리빨리’가 아닌,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믿고 바라봐줄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는 정책에 관해서도 너무 획일적인 잣대로 모든 것들을 평가하고 결정을 내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자들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같은 주제를 연구하더라도 새로운 방향의 시도를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 분야를 선택 할 때도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장고해야 한다. 연구 성과와 업적을 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연구자의 방향성이나 소신이 오롯이 서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최 교수는 다른 이들이 가지 않았던 길에도 관심을 가져볼 생각이다. 물론 본인이 맡은 역할과 현재의 연구를 뒷전에 둘 순 없지만 새로운 도전을 반복하며 자신만의 탑을 쌓을 예정이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아요. 그런데 큰 나무에서 돋아난 싹은 잘 자랄 순 있지만 자라면서 한계가 있기 마련이거든요. 땅에서 스스로 자라난 싹은 앞으로 더 큰 나무가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를 비롯한 신진연구자들도 위험이 따르더라도 좀 더 열린 생각으로 도전해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