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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Korean Academy of Science and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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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의 창 2019 여름호_Dr. Y의 노트(정가영 교수)

이름 |
관리자
Date |
2020-06-17
Hit |
10
‘Dr.Y의 노트’는 한국차세대과학기술한림원(Y-KAST) 회원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네모난 창입니다. 차세대회원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물’을 통해 젊은 과학자들의 생각을 듣고, 그 가치를 함께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단백질의 구조를 연구하며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정가영 성균관대 교수의 노트를 열어봅니다.
알을 깨고 나온 과학자 , 유리천장 너머를 꿈꾸다
단백질의 구조를 연구하는 약학자 '정가영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노벨상 수상자의 제자.
정가영 교수를 줄곧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 하나다. 2012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스승 코빌카(Brian Kobilka)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 덕분에 정 교수도 한동안 국내에서 유명세를 치르며 화제의 인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그것 뿐, 과학자로서 그의 이름이 빛난 건 아니었다.

성장을 위해선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만 한다고 했던가. 2019년 현재, 정 교수는 자신의 이름으로 오롯이 반짝이고 있다. 그것도 스승이 밝힌 단백질 구조의 형성 원리를 밝히는 연구 결과로 말이다. 자신만의 힘으로 높이 비상하기 시작한 정 교수에게 연구 영감(靈感)의 원천을 물었다. 그의 눈길이 닿는 곳엔 정육면체의 크리스탈 기념패가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단백질 구조가 새겨진 크리스탈, 일종의 행운석이죠
“코빌카 교수가 노벨상을 받았던 그 단백질 구조를 3D화해서 새겨 넣어 2011년 당시 함께 연구하던 프로젝트 팀원들에게 선물했는데, 연구결과가 2011년도에 발표되고 1년 만에 노벨상을 수상하신 거예요. 이걸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 안돼서, 저에겐 귀할 수밖에 없는 물건입니다. 볼 때 마다 그 때, 그 시절의 연구 열정을 떠올려요.”

코빌카 교수는 로버트 레프코비츠 듀크대 교수와 함께 'G단백질 결합수용체(GPCR·G-Protein Coupled Receptors)의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201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수상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코빌카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한 정 교수의 공로도 상당했다. 그는 코빌카 교수의 지도 아래 당시 함께 연구원으로 동고동락했던 라스무센 (현)덴마크 코펜하겐대학 교수와 공동으로 GPCR과 G-protein의 결합체 구조에 관한 연구논문 2편을 학술지 네이처에 동시 게재하기도 했는데, 이 연구 성과가 노벨상 수상의 근거가 됐다.

“귀국 후 노벨상을 수상한 단백질 구조가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법으로 연구를 시작했어요. 라스무센 교수도 함께 했죠. 그로부터 2년 뒤에 코빌카 교수님의 환갑기념 세미나에서 제자들이 하고 있는 연구를 발표했는데, 제가 발표를 하니 코빌카 교수님께서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그때부터 교수님도 함께 참여를 하셨죠. 껄껄껄 웃으시며 자신이 밝힌 구조의 형성 원리를 다른 팀에서 발표하면 민망하니까 자신이 꼭 포함되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런 개방적인 면은 저희가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해요.”

정 교수는 수 년 간의 공동 연구 끝에 2016년 G단백질과 수용체가 결합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구조적 변화를 제시하고 노벨상 수상 구조가 실제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작성해냈다. 그러나 발표는 쉽지 않았다. 노벨상으로 인정받은 개념에서 벗어나는 내용이었기에 학계는 쉬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정 교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이후 2년간 결과를 보충하고 연구 결과를 이해시키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8년 10월 논문을 제출했고, 몇 번의 수정 작업 끝에 게재 승인을 받으며 생명과학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Cell지에 논문을 올릴 수 있었다. 그의 논문은 노벨화학상 수상 이후 미지의 분야였던 G단백질과 GPCR의 결합과정의 원리를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세포막의 문지기인 GPCR은 호르몬, 의약품 등을 세포 내로 전달해 적절한 반응을 유도하는 물질인데, GPCR이 G단백질을 만나는 과정을 열쇠로 자물쇠를 여는 것에 비유할 수 있어요. 열쇠가 수용체이고 자물쇠를 G단백질이라고 할 때, 노벨상을 받은 구조는 열쇠가 자물쇠로 들어가서 문이 열린 이후 살짝 변화한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열쇠가 문을 여는 과정의 구조가 이미 문이 열려 있는 상태의 구조보다 의약품 개발에 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결과를 도출한 거죠. 현재 사용 중인 의약품의 40%가 GPCR을 통해 작용하고 있는데, 이번 연구 결과가 향후 GPCR에 작용하는 의약품 개발에 새로운 전략으로 활용되길 바라고 있어요.”

노벨상 수상자와의 연구,
막연한 꿈이 현실로 이뤄졌어요

정 교수가 약학 연구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시작점은 이과와 문과의 갈림길에 선 한 소녀의 선택으로부터였다.

“원래는 동시통역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게 문과 머리는 없더라고요. 언어영역을 보면 늘 왜 그게 답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그래서 이과 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가만 생각해보니 이과 쪽에서도 여성이 두각을 낼 수 있는 분야가 많지는 않더라고요. 고민 끝에 약학을 선택했고, 의료행위보다는 연구가 더 좋았기에 연구자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약학은 실로 방대한 학문의 결정체였다. 한 개의 약을 개발하기 위해선 사람의 몸을 잘 알아야 하는 것부터 병이 왜 일어나는지, 병이 일어나는 기전이 무엇인지, 약은 어떻게 만들 것인지 등의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한다. 여기엔 생리학, 병리학, 분자세포생리학, 약제학, 약동학, 약물학, 독성학 등의 학문이 포함돼 있다. 약학대학에 들어가면 4년간 이 모든 학문을 배운 후, 대학원에 가서 주 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석사과정은 독성학을 했고, 박사는 생리학,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은 구조생물학을 했어요. 석사 때 심혈관 독성학을 공부하다 유학길에 오르게 됐고, 유학을 가서 심혈관 분야에 대한 연구실을 찾아 심장 생리를 하는 연구실에 가서 연구를 했습니다. 그리고 심혈관계를 조절하는 우리 몸의 주요한 단백질이 GPCR이었기에 코빌카 교수님 연구실에 가서 연구를 하게 된 거죠. 그때부터 시작한 구조 분야 연구가 재미있어서 지금까지 하고 있고요.”

당시 코빌카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었지만, 관련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 중 한 사람이었다. 학문적 호기심을 따라 이끄는 대로 흘러 들어온 곳이 마침 코빌카 교수의 연구실이었다는 게 그에겐 가장 큰 행운일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은 제게 앞으로 이 분야를 연구하면 어떤 장점이 있는지 상세히 설명을 해주시곤, 선택은 제게 맡기셨어요. 그 분은 그런 분이셨어요. 제게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셨죠. 또, 일반적으로 교수님들은 실험을 많이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분은 항상 실험실에 계셨어요. 실험실에서 활발하게 토론을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와 공동 연구라니, 학생 때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죠. 꿈이 현실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에요.”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도전,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자 되겠다
석사 시절의 정 교수는 넓은 세상에 대해 막연한 동경과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그때, 그를 밖으로 인도한 건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과 함께했던 시간이었다. 부딪히며 성장한 시간은 그를 스스로 알에서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정 교수는 이 같은 경험을 제자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제자들에겐 제가 시행착오를 먼저 겪은 선배이기도 하죠. 같은 길 위에 서 있는 거잖아요. 교수의 직함을 받은 지 이제 겨우 7년이지만, 제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있는 힘껏 지원해주고 싶어요. 하나 말해주고 싶은 건, 연구자로서 길을 밟고 있는 제자들 앞에는 스스로가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크고 재미난 세상이 펼쳐질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연구는 100m 달리기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이에요. 어려운 일도 있겠지만, 보람 있는 일도 많을 겁니다. 포기하지 않고 나아갔으면 해요.”

정 교수 역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갈 계획이다. 눈앞에 닥친 목표만 이루며 살아왔다는 그는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 분야를 선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GPCR 활성 기전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좀 더 효과적이고 부작용이 적은 약물 개발을 위한 플랫폼을 마련하는 것이 궁극적인 연구 목표입니다. 연구 분야에 여러 가지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존재하는데요. 서구권과 미국, 유럽 중심 속에서 아시아에게만 해당되는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있어요. 아직 아시아권은 GPCR 분야 연구가 약한데 범아시아권 연구들과 활발하고 실질적인 연구 교류를 통해 아시아도 이 분야에서 뒤지지 않는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어요. 이를 위해 중국, 일도, 일본 등 학회에 가서 만나는 교수님들과 관계를 공고하게 다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과학자의 비상은 보이지 않는 저 너머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확장된 그의 세계에서 화려한 날갯짓을 펼칠 수 있게 되길 기원해 본다.